관광호텔 재미로 보는 주몽 당대의 고구려 영토 확장!
* 여러분의 '추천'이 다음 글의 원동력입니다!
* 파란색 글자는 우리 측 사료, 빨간색 글자는 외국 측 사료입니다!
1. 추모왕 재위기 통치 기록의 특징
주몽은 건국설화가 참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 차례 말씀 드렸듯이 주몽 이전에도 이미 고구려는 100년 이상이나 존재 했었고,
주몽설화조차도 고구려인들이 부여의 시조 동명의 건국설화를 거의 그대로 베껴서 만든 것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몽은 건국설화가 워낙에 유명한지라 대중의 관심과 연구의 초점은 건국설화에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주몽 재위기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하지만 추모왕 재위기의 기록엔 별 내용이 없습니다!
오늘 다룰 영토 확장 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기록들을 싹 보여드리겠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3년 봄 3월, 황룡이 골령(鶻嶺)에 나타났다.
동명성왕 3년 가을 7월, 상서로운 구름이 골령 남쪽에 나타났는데 그 빛깔이 푸르고 붉었다.
동명성왕 4년 여름 4월,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7일 동안이나 빛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동명성왕 4년 가을 7월, 성곽과 궁실을 지었다.
동명성왕 6년 가을 8월, 신령한 새들이 궁궐의 뜰에 모여들었다.
동명성왕 10년 가을 9월, 난새(鸞, 전설 속에 나오는 상서로운 새)가 왕궁에 모여들었다.
동명성왕 14년 가을 8월, 왕의 어머니 유화가 동부여에서 돌아가셨다.
그 나라 왕 금와가 태후의 예로써 장사를 지내고 신묘를 세웠다.
동명성왕 14년 겨울 10월, 사신을 부여에 보내 토산물을 주어 그 은덕을 갚았다.
동명성왕 19년 여름 4월, 임금의 아들 유리(類利)가 부여에서 그의 어머니와 함께 도망해왔다.
임금은 기뻐하며 그를 태자로 삼았다.
동명성왕 19년 가을 9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이때의 나이가 40세였다.
용산(龍山)에 장사 지내고 호를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고 하였다.
진짜 별 내용이 없지 않습니까?
황룡이 나타났다거나, 상서로운 구름이 나타났나거나, 신령한 새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저 추모왕을 성스럽게 꾸미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뿐 실제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진짜로 별 내용이 없는데요.
그나마!
영토 확장 기록들이 있으므로 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추모왕 시기의 고구려 영토 확장!
이 지도는 제가 대충 그린 것이니까 재미로만 보세요!
대략적인 느낌만 가져가시면 됩니다!
추모왕 시기의 영토 관련 기사는 딱 3개가 있습니다.
하나씩 보시죠!
가. 송양의 항복 기사
먼저 살펴볼 기사는 송양의 항복 기사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2년 여름 6월, 송양이 나라를 바치며 항복해 오므로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그곳의 군주로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이라 하였기 때문에 그곳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송양의 항복에 대해서는 이미 과거에도 다루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마치 주몽이 세운 고구려가 송양의 비류국을 정벌한 것처럼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이는 후대 고구려인들의 조작일 뿐,
실제로는 주몽 이전의 '비류부 왕실의 고구려'가 존재 했었고,
송양이 바로 비류부 왕실의 마지막 임금으로
주몽과 송양의 대결은 비류부 왕실에서 계루부 왕실로의 변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만 후대 고구려인들이 주몽 이전의 비류부 왕실의 고구려를
고구려의 역사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바람에
그 일환으로 주몽이 세운 고구려가 비류국을 정복한 것처럼 적어버렸을 뿐이지요.
여담이지만 이 기록에 나오는 '다물'은 옛 땅을 회복한다는 고구려 말이라고 하는데요.
이를 놓고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송양의 입장에서 옛 땅을 회복했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송양은 나라를 모두 빼앗겼지만 주몽의 배려로 자신만의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그 땅을 다시 되찾은 옛 땅이란 의미로 '다물도'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는 것이지요.
현재 학계에서는 이 견해가 제일 많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고 이에 대한 반박은 아직 없습니다.
나. 행인국 정복 기사
그 다음 정복 기사는 행인국 정복 기사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6년 겨울 10월, 임금이 오이와 부분노(扶芬奴)에게 명하여
태백산 동남쪽의 행인국(荇人國)을 정벌하게 하고, 그 땅을 빼앗아서 성읍으로 삼았다.
이 기사에 나오는 '오이'는 추모왕과 함께 부여에서 남하를 한 3명의 신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부분노'는 <삼국사기>에서는 이 기사에서 처음 등장하지만,
<구삼국사>에서는 송양의 비류국 정벌기사에도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부분노는 유리왕 당시에도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 기사에 따르면 추모왕 시기의 고구려는
'태백산 동남쪽'의 행인국을 정복했다고 하는데요.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여기서의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보고
그 동남쪽인 평안북도 영변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아마도 단군 관련 기사에서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묘사한 것이 있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여기서의 태백산을 '백두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함경북도 무산 또는 그 남쪽 해안가로 보는 견해(역주 삼국사기)
함경북도 삼지연시로 보는 견해(동북아역사지도) 등이 있는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삼지연시는 백두산 그 자체로 보여서 '동남쪽'이란 문언과 안 맞는 것 같구요.
무산 지역은 뒤에서 볼 북옥저 지역 정복에 있어서
두만강 물길을 따라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서
평북 영변이나 함북 삼지연시보다는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사서상의 '태백산 동남쪽'이란 문구 하나만으로 비정하는 것인지라
완벽하게 위치를 비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만,
그것이 또 고대사의 재미 아니겠습니까?!
다. 북옥저 정복 기사
마지막으로 볼 기사는 북옥저 정복 기사인데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10년 겨울 11월, 왕이 부위염(扶尉猒)에게 명하여 북옥저(北沃沮)를 정벌하여 멸하게 하고, 그 땅을 성읍으로 삼았다.
여기서의 북옥저는 두만강 하류 지역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조금 더 후대의 고구려는 이 지역을 '책성'이라고 불렀습니다.
고구려 중기는 물론 후기까지 매우 중요한 접경 지역이었죠.
나중에 부여사를 다룰 때 말씀드리겠지만
이 지역은 훗날 부여인들이 피난을 와서 자립하기도 합니다(통설).
이를 '동부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광개토대왕이 동부여를 정복하는 내용이 <광개토대왕릉비>에도 나와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서 동부여를 소개하는 부분만 보여드리겠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
20년 경술(410) 동부여는 옛날부터 추모왕의 속민이었는데
중간에 배반하여 조공을 하지 않아
왕이 몸소 (군대를) 이끌고 가 토벌하였다.
이렇듯 북옥저 지역은 추모왕 당대에 정복되었다는 게
<광개토대왕릉비>에서도 확인이 되네요!
3. 나오며
여기까지 추모왕 시기 영토 확장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떠신가요?
추모왕의 영토 확장 기록은 잘 안 알려져서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다음 글에서 또 만나요!
한울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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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사]
1화 고조선의 시작 ( https://www.fmkorea.com/6808819260 )
2화 지도로 보는 고조선의 시작과 발전 ( https://www.fmkorea.com/6808932752 )
3화 기자조선은 정말로 존재했을까? ( https://www.fmkorea.com/6810045304 )
4화 패기가 넘치던 왕국(王國), 고조선 ( https://www.fmkorea.com/6814039047 )
5화 우리 역사 최초의 전쟁 -고조선의 대몰락- ( https://www.fmkorea.com/6820881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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