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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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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리(은행정, 사시, 발화 마을)마을

은행정 마을

세대수-62, 주민수-117(4%)
937년 법정리,동을 자연부락 단위로, 화천리에서 분구하면서 은행정으로 (아랫말, 윗말, 아홉사리)로 부르게 되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새제를 내러오던 사람이 이곳에 명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곳에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지정보호수) 400년 수령이고 마을 입구에도 3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으나 반은 고사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왕박골에서 흐르는 냇물을 막아 소류지를 축조 했었으며 지금도 간헐적으로 농업용수로 활용 하고 있다. 아랫마을 동북간에는 ‘구무정“이란 넓은 뜰이 있는데 승려9명이 아홉 번 춤을 추었다고 전하여 조(操) 천석을 한 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일자산, 와우형(臥牛形-용바위-용머리)이라는 명당이름들이 자주 거론되는 마을 이다.
  • 은행정마을
    마을입구
  • 은행정마을
    은행정 은행나무
주민들이 참여했던 영농법인 ‘한마루식품“에서는 된장, 고추장, 메주,간장, 청국장가루가 인터넷으로 전국에 판매된다. ’산촌생태마을조성사업‘으로 비닐하우스(표고버섯), 저온농산물 창고, 하천정비, 찜질방, 상수도 보수 공사 등을 실시 하였다.

발화 마을

세대수-37, 주민수-74(2%)
발화마을은 마을 이름 그대로 “꽂이 피는 마을”으로 마을주변에 꽂나무, 유실수, 등의 가로수가 식재되어 있다. 토지가 비옥하여 인삼,고추, 연초등이 재배 되었으나 지금은 대학찰옥수수가 주 산 지가 되었으며 고추, 배추, 브로콜리와 함께 율무,기장, 수수등의 잡곡의 제배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1996년 “밭 기반정비사업”이 잘 정비되어 안정적으로 농작물 제배가 가능한 지역이다.

“꽂피는 마을”에 걸맞게 영산홍, 베롱나무, 메이풀, 벚나무등이 식재 되어 있으며, 4계절 “꽂피는 마을”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마을을 가꾸고, 예쁘게- 봄부터 가을 까지 꽂과 열매를 볼 수 있도록 심고, 가꾸는데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는 아마도 수년간 이장을 해왔던 권오춘 이장(현재 농협 조합장)의 남다른 노력이 아니였을까?
  • 발화마을
    발화입구
  • 발화마을
    다기능회관
2007년도에는 산촌생태마을조성사업으로- 장류공장, 저림공장, 저온저장고,황토방, 장뇌삼 재배등으로 마을의 농외소득을 증가시키는데 크게 일조 할 것이다. 1997년 완공된 발화마을 회관은 주민 이전영씨가 대지를 희사하셨고, 가가호호 30만원씩을 갹출하여 아담하게 2층 조립식으로 건립하였다.

사시(냉천동) 마을

세대수-38, 주민수-75(2%)
원래 사시마을의 명칭은 냉천 동(찬물내기)라 했는데 이 동명(洞名)이 생긴 것은 큰 범안당골의 논 위의 도랑, 돌 틈에서 찬물이 흘러나오는데, 여름철에는 손.발을 오래 담그지 못할 정도로 냉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하늘이 준 냉천동”- 약초를 캐러 다니는 한 노인이 선녀와 선동이 앉아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 발을 적시며 대화를 주고받는데 “옥황상제께서 만들라는 샘 자리가 틀림없어!! 한양으로 통하는 큰 길이 된다면 이 물을 안 마시는 사람이 없을꺼야!

그 노인이 그날부터 바위 밑 옹달 샘 옆에 조그만 주막을 세우고 술을 빚었다. 사람의 통행이 점점 많아지면서 사람마다 천하에서 제일가는 시원한 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이곳을 ‘냉천” “찬물내기”불리워 지고, 노인의 주막 또한 성업을 이루고 사람들이 모여 동리를 만드니 이곳이 “냉천동”이라고 부르며 일명 사시동 이라고 부른다(내고장 전통가꾸기-1981년 중원군)
  • 사시마을
    사시마을입구
  • 사시마을
    다기능회관
도로변에는 여름철에는 원두막에 옥수수등을 판매하여 큰 수익을 올리기도 했던 마을이다. 밭농사가 주생업인지라 고추, 사과, 호박, 산나물, 옥수수등이 관내에서는 으뜸이다. 한 때는 이 마을의 태양초가 서울에서 주문밎 판매가 성황이었다. 김도식씨(농민회 수안보회장)는 마을의 냉동 창고를 관리하며 대학찰 옥수수등 농산물등을 공동 관리 해준다.